동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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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및 연혁
장충동이라는 명칭은 이 부근에 있던 장충단의 이름을 따서 생겨난 것이다. 1900년에 설치된 장충단은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열사를 기리는 제를 지내던 곳인데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동 이름을 유서 깊은 우리 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 지역 일대가 장충동으로 이름 지어졌다. 그리고 묵정동이라는 동명은 「먹절골」이라는 마을이름에서 비롯되는데 이 먹절골은 지금의 묵정동, 충무로 4, 5가, 필동 2, 3가에 걸쳐있던 지역이다. 오래 전 이 일대는 「먹절」 혹은 「묵사」로 부르던 절이 있어서 먹절골 혹은 먹적골, 묵동(墨洞), 묵사동 등으로 불렸다. 먹절골에는 또한 그 깊이가 매우 깊어 늘 시커멓게 보이므로 「감정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는데 바로 먹절골의 「감정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묵정동이라는 동명이 유래된 것이다.
현재의 장충동 일대는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5부 52방 중 남부 명철방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때 장충동 1가 지역은 동서헌정(東西軒町), 2가 지역은 서사헌정(西四軒町)이 설치되었고, 광복 후 1946년 10월 장충동 1가 동회와 장충동 2가 동회로 바뀌어 각각 장충동 1가, 2가 지역의 행정을, 묵정동은 1947년 말에 묵정동회가 설치되어 각각 그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1955년 4월18일(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동설치조례」에 의한 행정동제 실시로 각각 장충동 1가동, 장충동 2가동이 되었고, 묵정동은 충무로 5가와 함께 야현동의 관할에 편입되었다. 1980년 7월1일(서울특별시 조례 제 1413호)「동사무소설치조례」에 의해 충무로 4, 5가동의 관할구역 일부가 장충동으로 편입 조정될 때 묵정동 일부가 장충동 관할이 되었고, 1985년 9월 1일 장충동 관할에 묵정동이 편입되면서 장충동 관할구역은 장충동 1가, 장충동 2가, 묵정동이 포함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장충동주민센터는 장충단로8길 22(장충동 1가 37-14)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장충동 [獎忠洞]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현황 2024년 10월 31일 기준
행정동명 | 면적 | 인구 | 세대수 | 통반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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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 | 1.36㎢ | 4,547명 | 2,859세대 | 9통 48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