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여행100선
서울의 중심, 중구를 대표하는 관광지100곳을 테마별 코스로 분류하여, 중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 1
자세히 보기
- 숭례문
- 이 건물은 조선시대 수도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도성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입니다.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숭례문은 삼남지방(경상·전라·충청)과 연결된 한강과 가까워 상업이 발달하는 조선 후기에는 숭례문 안팎으로 시장이 발달했습니다.
- 2
자세히 보기
- 남대문시장
- 남대문시장은 주변 상가까지 포함해 58개 동, 1만여 점포를 갖추고 6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인 시장입니다.
- 3
자세히 보기
- 구 제일은행 본점
- 구 제일은행 본점의 전신은 조선저축은행입니다. 한국 최초로 현상공모를 통해 건물 설계안을 채택하였으며 1935년에 준공되었습니다.
- 4
자세히 보기
- 신세계백화점
- 1930년에 미쓰코시 경성지점으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입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동화백화점이 되었다가 6·25전쟁 때는 미군의 PX로 사용되었으며 1963년부터 신세계백화점으로 개장하였습니다.
- 5
자세히 보기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1912년에 준공된 구 한국은행 본관은 르네상스 형식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서 중앙은행의 업무를 하다가 2001년부터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 6
자세히 보기
- 우표박물관
- ‘인천우편국 경성출장소(仁川郵便局 京城出張所)’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가 1901년 3월에 ‘경성우편국’으로 개칭하였습니다. 1898년 10월에 신축한 건물을 사용하다가 그 이후 1915년에 이 건물의 앞쪽에 다시 3층 높이의 신청사를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울중앙우체국 자리에 해당합니다. 현재는 2007년 세워진 포스트타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 7
자세히 보기
- 롯데백화점 스타에비뉴
- 롯데백화점 본점 입구에 위치한 스타에비뉴(스타의 거리)에서는 한류스타를 담은 사진, 미디어 그리고 한류스타의 손을 핸드프린팅한 동판, 한류스타의 애장품, 인터렉티브 시스템을 이용한 한류스타 콘텐츠를 만날 수 있습니다.
- 8
자세히 보기
-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
- 1928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의 사옥으로 완공된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건물로 국내 최초 내화·내진 설계를 적용하였습니다. 광복 후 2개 층을 증축하였고 현재는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근대건축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등록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9
자세히 보기
- 구 미국문화원(그레뱅 뮤지엄)
-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완공된 일본기업 미쓰이 물산의 경성지점이었습니다. 광복 후 미국대사관과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서울시청 을지로별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유명인물을 밀랍인형으로 전시하는 그레뱅 뮤지엄으로 개관합니다.
- 10
자세히 보기
- 구 서울특별시 청사(서울도서관)
- 구 서울특별시 청사는 1926년 경성부의 청사로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입니다. 현재는 서울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11
자세히 보기
- 환구단
-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이곳은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린 곳입니다. 1897년 완공된 환구단은 당시 황실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이 설계했습니다.
- 12
자세히 보기
- 명동성당
-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인 명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주교좌 성당으로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프랑스인 코스트(Eugene Joan George Coste) 신부가 설계하고 1898년에 완공됐으며 1,000여 명에 가까운 신도들의 자원봉사로 지어졌습니다.
- 13
자세히 보기
-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박물관은 1888년 프랑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서 한국으로 파견한 수녀 4명으로부터 시작한 수도회의 역사를 수집·연구·보존·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종교전문 박물관입니다.
- 14
자세히 보기
- 이회영 흉상
- 1867년 서울 중구 저동에서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회영은 활발한 독립운동 활동을 펼치다 1932년 순국했고,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 15
자세히 보기
- 명동예술극장
- 1936년에 건립된 극장 명치좌는 광복 후 국제극장, 시공관, 국립극장 등으로 변화를 겪었고 한 때 철거의 위기도 있었지만 2009년에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하였습니다.
- 16
자세히 보기
- 명동난타전용관
- 난타는 1997년 10월 초연 이후 국내 최다 관객을 동원한 한국 최초의 비언어극입니다. 명동 난타전용관은 2009년 10월에 개관하여 난타만 상설 공연하는 공연장입니다.
- 17
자세히 보기
- 유네스코회관
- 유네스코회관은 1967년에 준공된 건물로 세워질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13층 건물이었으며 최첨단 설비로 지어져 명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습니다.
- 18
자세히 보기
- 명동의 시대별 장소적 의미
- 명동은 일제강점기 시기 진고개에 주거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이후 명동은 금융, 상업, 문화가 집중된 곳으로 성장합니다.
- 19
자세히 보기
- 명동백작 이봉구
- 1943년부터 매일신문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봉구는 명동에서 활동한 문인입니다.
- 20
자세히 보기
- 명동의 다방 문화(1950~60년대, 문화예술의 중심지)
-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 6·25전쟁을 거쳐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명동의 다방은 문화예술가들이 모여들어 토론하고 작업하고 쉬어가는 장소였습니다.
- 21
자세히 보기
- 명동 다방의 변천사
- 다방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만들어져,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문화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종합예술의 장이 됩니다. 1970년대가 되어서는 히피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찾습니다.
- 22
자세히 보기
- 1970~80년대 패션과 유행의 공간 명동
- 1970년대 명동은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높은 곳이었고, 첨단을 걷는 패션이 유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서구에서 들어온 히피문화를 다방과 비어홀에서 즐기기도 했습니다.
- 23
자세히 보기
- 명동의 소극장들
- 6·25전쟁 후 국립극장이 명동 시공관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명동은 공연예술의 중심지가 됩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국립극장이 이전하면서 명동에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소극장이 공연예술을 이끕니다. 대표적인 극단으로 자유극단과 삼일로 창고극장이 있습니다.
- 24
자세히 보기
- 명동의 유일한 쉼터, 명동공원
- 1950년대에 만들어진 명동공원은 상업시설로 번잡했던 명동의 오아시스였습니다. 근처에 살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였고, 근처 상가나 회사에 근무하던 직장인들이 잠시 쉬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거나하게 취한 명동 술꾼들이 집에 가기 전 술을 깨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 25
자세히 보기
- 요절한 예술인들(박인환, 전혜린, 윤용하, 이중섭, 김관식)
- 1950년대 명동의 예술가들은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는 강렬하게 타오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도 있었습니다.
- 26
자세히 보기
- 1950년대 명동의 하루(동아일보 1957년 기사)
- 1950년대의 명동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동안 억눌렸던 사람들의 소비 욕구가 분출되던 곳이었습니다. 1957년 명동의 번잡한 하루를 자료를 기반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동아일보 1957.11.25 「서울의 축소판 명동의 하루」 기사 참조)
- 27
자세히 보기
- 1950~60년대 명동의 유행과 패션
-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 6·25전쟁을 거쳐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명동의 다방은 문화예술가들이 모여들어 토론하고 작업하고 쉬어가는 장소였습니다.
- 28
자세히 보기
- 명동의 양장점
- 1950년대 말부터 명동지역에 양복점, 양장점, 양화점, 미용점 등이 집중적으로 생기고 그에 따라 명동을 중심으로 양장점과 미장원 관련 학원·학교들도 많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양장점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패션을 알려주는 공간이었습니다.
- 29
자세히 보기
- 은성주점, 명동샹송-세월이 가면(박인환)
-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은성주점은 1950~60년대 명동의 문화예술가들이 자주 찾던 술집입니다. 다른 술집에 비해 정갈하여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 30
자세히 보기
- 중식당 아서원 이야기, 중국인 거리
- 아서원은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화교 경영 중화요리점이며 유명 정치인과 경영인들의 회합장소로 많이 쓰였습니다. 명동의 서측 끝 남대문로와 접해있는 삼각형의 블록과 눈스퀘어에서 중앙우체국 뒤로 가면 개화기 때 형성된 중국인 거리가 나타납니다. 이곳에는 오래된 중국인 음식점과 중국 물품을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