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통합검색

문화/역사

정도 600년, 그 중심에서 빛나는 전통도시

1 조회수: 1100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출처 - 중구청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출처 - 중구청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역사문화 테마공원입니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일부로, 건축 당시에 발견된 유물, 유구들을 전시·관람토록 해놓았습니다. 또한 동대문 운동장에서 과거 치렀던 경기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있기까지의 역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자리에는 동대문운동장이 있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로 1925년 일제가 일본 황태자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건립했습니다. 처음 이름은 경성운동장입니다. 경성운동장을 짓기 위해 조선말까지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과 언덕을 따라 놓인 한양도성 성벽도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하도감은 조선시대에 서울 수호와 왕의 신변보호, 지방군의 훈련과 치안을 담당했던 훈련도감의 한 분영입니다. 하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1594년(선조 27)에 도체찰사 유성룡의 제청으로 창설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남산물길이 통하던 이간수문, 청계천이 흐르던 오간수문 그리고 한양도성이 위치하였습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공사 중 발견된 유물들을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동대문유구전시장에 나눠 관람토록 하고 있습니다.
경성운동장, 서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의 추억
경성운동장 시절 스포츠에 있어서만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 뒤지지 않아 스포츠에 대한 열기가 굉장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으로 권투선수 서정권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선수들을 숱하게 때려눕혔습니다. 그가 미국에 가 세계랭킹 6위까지 하고 돌아온 날 몽양 여운형의 소개를 받아 열린 경기에서 ‘가시와우가코로’란 일본 선수를 TKO로 이겨 조선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습니다. 광복 후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전성기를 누립니다. 광복 뒤 처음 열린 1945년 전국 체전도 이곳에서 열렸는데요.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국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해 금메달을 딴 후 눈물 흘렸던 손기정선수가 태극기 기수로 섰습니다. 그는 옛 생각이 나 만감이 교차했던지 눈물범벅이 되었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 경성운동장은 큰 대회를 수없이 많이 치릅니다. 월드컵 예선, 고교야구대회, 프로야구·프로축구 개막전, 고대·연대 정기전 같은 쟁쟁한 경기들이 이곳에서 치러졌습니다. 그 후 1984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종합운동장으로서 대표적인 위치를 넘겨주었고 이름도 동대문운동장으로 바뀝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경기와 문화행사에 관련된 자료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대문유구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땅 속에 있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각종 자기와 기와, 동전 등과 함께 조선시대 수문인 이간수문, 한양 도성 일부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축구장과 야구장을 철거한 자리에서도 건물지와 집수지, 우물지가 발견되어 야외에 설치된 동대문유구전시장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동대문역사관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건립공사 중 발굴 조사된 매장 유물을 보전·전시해 놓았습니다.

상세정보

전화번호
02-2153-0408~9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을지로7가 2-1)   지도보기
개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東大門歷史文化公園)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일부이다. 역사문화 테마공원으로 2009년에 개장했다.
설명
동대문역사문화공원(東大門歷史文化公園)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일부이다. 2007년 동대문운동장 철거작업을 시작하면서 매장된 유물들이 출토되자 2008년 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하여 이때 발굴된 유물을 보존 및 전시하기 위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조성계획을 발표한 후 2009년 10월에 개장했다. 이처럼 많은 유물이 발굴된 까닭은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下都監)과 훈련도감(訓鍊都監),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운동장이 있었던 것을 비롯하여 유서 깊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부지면적은 6만 5,232㎡이며, 주요시설은 동대문역사관, 서울 한양도성(서울 성곽)과 이간수문(二間水門) 유적,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이간수 전시장, 이간수마당, 갤러리 문(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시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대문역사관에는 조선 전기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출토된 다양한 유물 2,575건(2,778점)이 시대별·발굴지역별로 전시되어 있다. 아울러 발굴된 유물들의 토층(土層) 탐험, 하도감(下都監) 터와 이간수문을 3D로 복원한 영상관, 유구지별 유물탐색 체험, 8면 바닥 영상, 유물발굴 체험, 동대문역사 백과사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제공된다.
서울 한양도성 유적은 발굴된 265m 구간 중에서 이간수문과 치성(雉城)이 포함된 142m 구간은 정비·복원되었다. 이간수문은 남산에서 발원해 청계천 본류로 흐르던 남소문동천 위에 세워졌던 2칸 구조의 수문으로, 1910년에서 1915년 일제가 성곽을 철거할 때 묻혔다가 발굴된 것이다. 치성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돌출되어 성벽을 견고하게 하는 동시에 방어가 취약한 곳을 보완하도록 축조된 방어시설로, 한양도성 성곽에서는 처음 발굴된 것이다. 그리고 성곽이 멸실된 123m 구간은 지적도상 추정 성곽선을 근거로 복원되었다.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는 1925년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2007년 철거되기까지 80여 년간 한국 스포츠의 산실이자 대중행사 및 기념행사 장소로 활용된 동대문운동장과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기념관 외부에는 1968년 보수공사 때 설치된 야간조명탑 2대와 1966년 서울에서 열린 제47회 전국체육대회 때 점화된 성화대가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도 이간수전시장(구 이벤트홀)은 소규모 전시회·음악회·콘퍼런스·행사 등을 위한 공간, 이간수마당은 예술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며, 갤러리문은 디자인 전용 갤러리이다. 관리 및 운영은 서울특별시에서 설립한 서울디자인재단에서 맡고 있다.
역사정보
1925 경성운동장 건립 1945 서울운동장으로 개칭 1985 동대문운동장으로 재개칭 2007 동대문운동장 철거 시작 2008 문화재 발굴조사 착수 2009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개장 2014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장
시대분류
현대/2009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공원/도시공원(도시자연공원, 시민공원, 어린이공원 등)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을지로7가 2-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
시작일(발생일)
2009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