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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회수: 987
서울의 600년을 감싸안은 한양도성

한양도성

백범광장-숭례문 구간의 한양도성

조선시대 태조가 수도를 방위하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총 길이 약 18.2km, 면적은 46만7922㎡이다.

4대문(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과 4소문(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두었다. 세종과 숙종 때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성곽의 돌모양을 통해 각 시기의 축조방식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추천명소 #05한양도성

  • 위치광희문 :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2가 105
    숭례문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 숭례문
  •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
  • 지하철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 맞은편
  • 버스간선 421, 463, 507 순환 05
흥인지문과 낙산공원 구간

흥인지문과 낙산공원 구간

흥인지문과 낙산공원 구간

흥인지문과 낙산공원 구간

태조는 ‘성곽은 안팎으로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는 것으로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북악산을 중심으로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둥글게 한양을 두르며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한양도성 안에는 궁궐과 종묘, 사직, 관아, 시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고, 왕과 수많은 백성들이 살았으니 이 성곽 자체가 한양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한양도성의 공사실명제의 흔적

한양도성의 공사실명제의 흔적

약 18km나 되는 한양도성의 공사기간은 고작 98일이라고 한다. 게다가 기록에 의하면 공사계획기간은 1396년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한겨울에 농번기에 들어가기 전 성을 쌓아야 하니 전국 팔도에서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야 했고, 성벽을 97개 구간으로 나누어 각각의 지역이 담당할 구간을 나누었다. 성곽을 걷다보면 글씨가 새겨진 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구간을 누가 맡았는지를 기록하여 책임있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돌뜬자리

돌뜬자리

축성시기가 다른 걸 확인 할 수 있다

축성시기가 다른 걸 확인 할 수 있다

다산성곽길. 돌의 형태로 축성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다산성곽길. 돌의 형태로 축성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성벽을 자세히 살피며 걸어보자. 한결같이 같은 형태로 이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돌의 모양도 다르고 구성도 다르다. 처음 축성한 태조 때와 보수공사를 했던 세종과 숙종, 이렇게 세 가지로 구별될 수 있다. 거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자연석으로 쌓여 있고, 작은 돌로 틈새를 메운 성벽은 태조 때 축조한 것이다. 세종 때는 어느 정도 돌을 규격에 맞게 다듬어 아래에는 큰 돌을, 위쪽으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았다. 300여년이 지난 숙종 때 다시 보수공사를 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5년에 걸쳐 반듯하고 매끈한 사각형으로 돌을 다듬어 전보다 훨씬 견고하게 쌓았다. 이렇다보니 성벽을 보면 어느 시기에 고쳐졌는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성곽의 암문. ‘토끼굴’이라고도 불린다

성곽의 암문. ‘토끼굴’이라고도 불린다

도성에 오르면 성안과 밖을 내려다볼 수 있다. 지금은 도성 밖에 많은 건물들이 지어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논밭으로 성안에 비해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 때 도성 안에 거주했던 사람은 103328명, 도성 밖 사방 십 리 이내에 살았던 사람은 6044명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대충 실감이 간다.

4대문 중의 하나인 숭례문

4대문 중의 하나인 숭례문

4대문 중의 하나인 숭례문

4대문 중의 하나인 숭례문

한양도성에는 성의 안팎을 통할 수 있는 네 개의 큰 문인 4대문과 작은 문인 4소문이 있다. 지금은 위치에 의해 4대문을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등으로 부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가 중시되었기 때문에 인의예지에서 한 글자씩 따 ‘어짊을 흥하게 한다는 뜻’의 흥인지문(동대문), ‘의로움을 북돋운다’는 뜻의 돈의문(서대문), ‘예를 숭상한다’는 뜻의 숭례문(남대문)이라 불렀다. 북대문인 숙정문은 원래 ‘지혜를 넓힌다’는 뜻의 홍지문으로 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너무 지혜로워지면 통치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의미로 숙정문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4대문 가운데 서대문인 돈의문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킨다는 명목으로 한양도성이 많이 부숴지게 되었는데, 돈의문도 당시 일본인들이 단돈 205원에 경매에 붙여 팔아 철거되었다. 흔적조차 없다는 것에 더 큰 역사의 아픔이 느껴진다.

4소문 중의 하나인 ‘광희문’

4소문 중의 하나인 ‘광희문’

다산성곽길 풍경

다산성곽길 풍경

한양도성 투어 중 만난 새

한양도성 투어 중 만난 새

4대문 사이에 4소문을 만들었는데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광희문,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에는 소의문, 돈의문과 숙정문 사이에 창의문, 숙정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혜화문이 그것이다. 4소문 중에서는 소의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의문은 광희문과 같이 시체가 나가던 문이었으나 이것 또한 돈의문처럼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표지석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길다란 한양도성길을 걸으며 발견하게 되는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진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의 빈자리도 슬프지만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옛 선조들의 삶을 이야기해 준다.

한양도성 해설사 프로그램

한양도성 해설사 프로그램

한양도성은 4개의 구간인 창의문~혜화문, 혜화문~광희문, 광희문~숭례문, 숭례문~창의문으로 나누어 걸어볼 수 있다. 나는 서울의 중심인 남산을 낀 광희문~숭례문 구간을 다녀왔다. 현대의 빌딩숲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과거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이간수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이간수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성곽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성곽길

코스의 시작인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로 흥인지문과 숭례문 사이에 있다. 오간수문, 이간수문이 가까워 ‘수구문’이라고도 물이 나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불렀는데, 도성 안의 시신이 나가는 문으로 사용돼 ‘시구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문이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로 곁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있는 것만 같았던 광희문에 생각지 못했던 슬픈 분위기가 느껴졌다.

광희문 벽화거리 주택가에서 발견한 성곽 흔적

광희문 벽화거리 주택가에서 발견한 성곽 흔적

다산성곽길 구간

다산성곽길 구간

해설사 선생님이 돌의 흔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해설사 선생님이 돌의 흔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곽길의 풍경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곽길의 풍경

광희문을 지나 좁은 신당동주택가를 걷다보면 건너편에 우리나라 최초의 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이 보인다. 장충체육관에서 반얀트리호텔 쪽까지 성곽이 이어져 있는데 이 길은 성곽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걸을 수 있으니 발길이 원하는대로 걸어보자. 걷다보면 경사가 급해지는데 힘들면 쉬엄쉬엄 올라가면 된다. 성곽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성곽길 풍경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성곽길 풍경

다산성곽길

다산성곽길

다산팔각정을 지나 우수조망소에 도착하였다

다산팔각정을 지나 우수조망소에 도착하였다

다산팔각정을 지나 우수조망소에 도착하였다

다산팔각정을 지나 우수조망소에 도착하였다

자유센터

자유센터

소나무 탐방로와 성곽길

소나무 탐방로와 성곽길

소나무 탐방로와 성곽길

소나무 탐방로와 성곽길

광희문~숭례문 구간은 꽤 긴데, 긴 길이 불편하고 힘들어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곳에 남소문이라는 문을 내고 성안팎을 이동했다고 한다.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반얀트리호텔에서 성곽길이 사라져 잠시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침착하게 국립극장 방향으로 내려오자. 근처에서 웅장하고 독특한 건축물인 김수근 건축가의 자유센터도 만날 수 있다. 성곽길을 따라 이제 남산 정상으로 올라야 한다. 이 구간은 다양한 모양으로 쌓인 성벽을 통해 보수 된 알 수 있는 조선시대 건축사 박물관 같은 곳이다.

성곽길과 그곳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성곽길과 그곳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성곽길과 그곳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성곽길과 그곳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N서울타워와 팔각정의 야경

N서울타워와 팔각정의 야경

전망대 풍경

전망대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양도성 성곽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양도성 성곽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양도성 성곽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양도성 성곽길

나무에 우거진 도성을 끝까지 힘을 내서 열심히 걷다보면 결국 N서울타워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는 팔각정과 남산봉수대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느긋하게 서울을 내려다보며 쉬었다 가자.

남산봉수대

남산봉수대

서울의 중심점

서울의 중심점

국사당터

국사당터

백범광장의 김구 선생 동상

백범광장의 김구 선생 동상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

팔각정 근처에 국사당터라고 쓰인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남산은 원래 목면산이라 불렸는데 태조 때 산신인 목면대왕을 모시는 신사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며 ‘국사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는 국사당을 없애고 조선신궁을 지었다.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스며있는 장소이다. 내려가다보면 백범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는데 그들의 숭고한 삶을 기억하도록 하자. 이제 곧 숭례문이다.

한양도성 [백범광장-숭례문 구간]

한양도성 [백범광장-숭례문 구간]

숭례문 야경

숭례문 야경

대한상공회의소 옆 한양도성 성곽길

대한상공회의소 옆 한양도성 성곽길

우리는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500년 역사를 가진 국보1호가 5시간만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리고 5년 간의 복원공사로 2013년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그 의미를 다시금 깨달으며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양도성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조선 500여 년의 역사를 함께하고,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날이 좋은 봄날 한양도성을 한 바퀴 걸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순성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우리도 현대과 과거가 어우러진 도성을 걸으며 성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름다운 자연과 숨겨진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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