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통합검색

서울중구 중구 문화관광

관광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서울 중구

조회수: 1713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약현성당
  •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청파로 447-1 (중림동)   지도보기
  • 문의 및 안내 02-362-1891
  • 이용시간
  • 주차시설 주차 가능
  • 홈페이지 http://www.yakhyeon.or.kr

개요

약현성당(藥峴聖堂)은 길이 약 32m, 너비 12m로 이루어진 396㎡의 소규모 성당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1886년(고종 23)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천주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명동성당 아래 공소(公所,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로 설립되었다. 1977년 11월 22일에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약현성당(藥峴聖堂)은 1891년(고종 28) 박해가 끝나고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약현성당은 종현본당(鐘峴本堂, 현 명동성당)에서 분리되어 서울에서 2번째, 전국에서는 9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청파로 447-1에 위치하고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은 본래 1887년(고종 24) 수렛골에서 한옥공소로 출발하였다. 블랑(Marie Jean Gustave Blanc) 주교가 지금의 중구 순화동 지역인 남대문 밖 수렛골에 집 1채를 마련해 교리 강습을 위한 강당을 차렸는데, 이것이 약현본당의 시작인 약현공소이다. 공소(公所,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가 설립되고 신자가 늘어나자, 1891년(고종 28) 종현본당의 두세(Camille Doucet) 신부는 뮈텔(Gustav Charles Marie Mütel, 1854~1933) 주교의 허락을 얻어 1891년 약초가 많아 약초고개[藥峴]라고 불리던 언덕을 매입해 성당 건축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891년 10월 27일 성당 정초식이 거행되고, 그해 11월 9일 두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약현본당이 정식으로 설정되었다.
당시 약현본당의 관할구역은 서울 도성의 외곽 지역뿐 아니라 경기도와 멀리 황해도 백천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약현성당은 1891년 10월에 착공해 1년 만인 1892년 준공하였다. 1898년 건축된 명동성당보다 6년 먼저 세워진 약현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로 지어진 교회건축물로 중요한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다. 약현성당의 건축에 동원된 흙은 서소문 밖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시신이 묻혀 있던 곳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약현성당은 이후에 건축되는 벽돌식 성당의 원형이 되었다.
약현성당의 초대 주임인 두세 신부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 1895년 약현서당을 세워 어린이들을 가르쳤고, 1901년에는 여자 어린이들을 위한 가명학교(可明學校)를, 1906년에는 남자 어린이를 위한 약명학교(藥明學校)를 설립했다. 1909년에는 교사를 증축하고 남녀 학교를 통합한 가명학교를 만들었다. 1998년 2월 11일 본당 건물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2000년 복원하였다. 2007년 7월 19일 중림동성당의 명칭이 중림동약현성당으로 변경되었으며, 2009년 9월 13일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을 개관하였다. 2010년 3월 5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서소문 순교성지 현양탑에서 성지 미사를 거행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