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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회수: 1217
호국 정신이 깃든 공간 속으로

장충단 호국의 길

장충단 공원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됐을 때 함께 숨진 장수들의 충성심을 기리는 제단이었던 장충단은 1919년 일제에 의해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광복 이후 일제가 세운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항일운동과 관련된 문화재와 동상들이 일대에 즐비해 호국의 길을 형성하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 민족의 아픔과 그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자.

Travel course

총 2.8 km , 도보 36분
  • 1장충단비
  • 2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 3수표교
  • 4이준 열사 동상
  • 5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 6유관순 열사 동상
  • 73.1독립운동 기념탑
  • 8국립극장
  • 9김용환 지사 동상
  • 10자유센터
장충단비 이미지

장충단비

A A
A B

A장충단비

B장충단 공원 전경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장충단 호국의 길’이니만큼 장충단공원에서 코스를 시작한다. 장충단은 명성황후와 함께 숨진 충신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었으나 일제는 그 의미를 없애기 위해 공원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후 한국전쟁까지 거치며 남아있던 사당과 건물들마저 사라지게 되었지만 장충단비만은 남아 장충단의 진실을 전하고 있다.

한국유림 독립운동파리장서비 이미지

한국유림 독립운동파리장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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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파리장서비

B파리장서비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1919년, 유림대표 137인의 서명과 함께 일제의 부당하고 잔혹한 한국 침략을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는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가 파리평화회의에 보내졌다. 이로인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려져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에 참가한 유림들은 가혹하게 탄압당하였지만, 조선이 유교국가였음에도 유일하게 나라를 위해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종교였다는 자괴감과 오명을 벗었으며 유림계는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표교 이미지

수표교

수표교 이미지 A
수표교 이미지 B
수표교 이미지 C

A수표교

B수표교

C수표교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61

조선 세종이 만든 다리로 원래는 청계천에 있었으나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며 지금의 장충단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만들어진 당시에는 마전교라고 불렸지만 홍수에 대비하는 역할을 하면서부터 수중주석표라 하여 ‘수표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숙종이 장희빈을 처음 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준 열사동상 이미지

이준 열사동상

이준 열사동상 이미지 A
이준 열사동상 이미지 B

A이준열사동상

B이준열사동상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

1907년 이준열사는 일제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고, 현지 언론들의 관심에 비해 열강들은 싸늘한 반응 뿐이었다. 이에 이준 열사는 연일 통탄하다 결국 순국하고 말았다.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덤덤하게 서 있는 모습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이미지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이미지 A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이미지 B

A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B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2가 산 7-24(장충리틀야구장 1루석 뒤)

국어학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민족말살정책으로 한글교육을 폐지하였던 일제에 맞서 우리말 교육에 앞장서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선생은 ‘우리말본’을 저술하여 국어문법체계를 최초로 정립하기도 하였다. 나라독립과 겨레를 위한 학문에 대한 공적으로 선생의 사후 1년이 지난 1971년 오월, 세종대왕의 생일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가 세워졌다.

유관순 열사 동상 이미지

유관순 열사 동상

유관순열사 동상 이미지 A
유관순열사 동상 이미지 B

A유관순열사 동상

B유관순열사 동상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101(남산 2호터널 입구)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동상으로1970년 남대문 앞 녹지대에 건립했던 것을 1971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 마음속 영원한 언니 누나이자 순국선열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3.1독립운동 기념탑 이미지

3.1독립운동 기념탑

독립운동 기념탑 이미지 A
독립운동 기념탑 이미지 B
B독립운동 기념탑 이미지 C

A독립운동 기념탑

B독립운동 기념탑

C독립운동 기념탑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91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과 그 후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3.1운동은 일제의 잔혹한 침략에 태극기와 독립만세를 외치는 비폭력 평화시위로 온 민족이 함께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을 감수하여야 했지만,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게 되었고 우리의 민족의식은 더욱 고취되었다.

국립극장 이미지

국립극장

국립극장 전경 이미지 A
국립극장 전경 이미지 B
국립극장 전경 이미지 C

A국립극장 전경

B국립극장 전경

C국립극장 전경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59 국립극장

1950년 4월 29일 설립된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이다. 대극장인 해오름극장과 소극장인 달오름극장, 다양한 공연이 가능한 별오름극장, 야외무대인 하늘극장으로 이루어졌다. 민족예술의 창조적 발전과 한국문화의 국위선양, 국민의 문화복지 향상을 목적으로 지어졌다.

김용환 지사 동상 이미지

김용환 지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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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김용환 지사 동상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59 (국립극장 입국 우측)

광복 이후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동포들이 모여 만든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이 창단되었다. 김용환 지사는 1968년 순직하기 전까지 20년간 거류민단에서 동포의 단결과 조직의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지금의 이 동상은 1970년, 재일동포의 성금과 정부 후원으로 건립되었다.

자유센터 이미지

자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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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센터 이미지 B
자유센터 이미지 C

A자유센터

B자유센터

C자유센터

  •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72

태평양을 향해 자유롭고 힘차게 나아가는 배를 형상화해서 만들어졌다는 자유센터는 반공연맹을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그래서 원래는 반공센터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반공의 의미를 확장하기 위해 이름을 자유센터로 바꾸었다고 한다. 건축가 김수근이 1964년 만든 건물이다. 지금은 한국자유총연맹과 더불어 예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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