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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명동의 유행과 패션'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여성들은 한복의 불편함을 깨닫고 양장을 선호하게 됩니다. 1950년대부터 명동에서는 여성들의 기호에 맞는 옷을 파는 양장점과 미장원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개요

6·25전쟁 이후 달라진 여성 복장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여성들은 한복이 생활하는데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편한 양장을 선호하게 됩니다. 휴전 후에는 여성도 경제활동에 나서면서 양장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높아집니다. 그러나 아직 양장의 착용법과 그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선택은 미숙한 상태였습니다. 1954년부터 신문 문화면에서 여성 양장에 대한 개념과 구체적인 착용법을 알려주었고 명동에 양장점도 늘어납니다. 스커트는 짧아지고 좁아졌으며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힙라인 밑의 곡선이 드러나는 맘보바지와 헵번 스타일의 짧은 머리가 대유행했습니다.
서구 패션스타일의 도입
1956년경이 되면 기존의 충무로 대신 명동1~2가가 새로운 쇼핑중심지가 되어 유행을 전파시킵니다. 충무로1~2가에 생긴 새로운 고층건물과 동화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 본관건물의 미군 PX에서 유출된 서구의 패션 서적이 명동 양장점과 미용실에 보급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양장점과 미장원이 중앙로와 명동길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이러한 변화를 재촉하였습니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복은 결혼식이나 명절과 같은 시기에만 입는 예복이 되었고 양장이 일상적인 의복이 됩니다.
명동을 중심으로 대거 등장한 디자이너
명동의 양장점 수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꾸준히 증가하였습니다. 가장 번성했던 1971년경에 이르면 명동에 위치한 양장점 수는 거의 150개에 이릅니다. 이 당시에 활동한 디자이너들은 패션문화의 중심지인 명동에서 활동했습니다. 기성 디자이너 최경자, 노라노 외에도 젊은 디자이너들인 앙드레 김, 미스 박테일러의 박윤정, 로라의 한계석, 조세핀 조의 조세핀 조, 쎄실의 김복환, 뉴스타일의 정창문, 조타의 박광현, 이사베라의 김정수, 블론디의 이선옥, 이외에도 김비함, 도재은 등이 소규모 양장점을 운영했습니다.
명동은 여성들이 서구의 새로운 유행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웠던 1950~60년대에 비싼 명동의 양장점과 미장원을 이용하는 여성고객의 상당수는 댄스홀의 댄서나 다방의 마담, 영화배우, 국극배우 등 직업적으로 외모관리가 필요한 여성들이었습니다. 양장점과 미장원을 찾았던 일반여성들로는 직장여성과 여대생 그리고 상류층의 기혼여성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집에 샤워시설이 없어 머리감기가 힘들었던 가정주부들이 머리 손질을 위해 1주일에 1번씩 미용실을 찾았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명동의 다방과 극장, 제과점, 댄스홀 등에 드나들면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였고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전국에 유행시켰습니다.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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