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중구 문화관광 로고

모바일 전체 메뉴
사이트맵 닫기

중구관광

1950년대 명동의 하루(동아일보 1957년 기사)

1950년대의 명동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동안 억눌렸던 사람들의 소비 욕구가 분출되던 곳이었습니다. 1957년 명동의 번잡한 하루를 자료를 기반으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동아일보 1957.11.25 「서울의 축소판 명동의 하루」 기사 참조)

개요

1957년 화려했던 명동의 하루를 경험해보자
1950년대 후반 파리에 샹제리제 거리, 뉴욕에 5번가, 동경에 긴자가 있었다면 서울에는 명동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명동은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쌌으며 1분에 13명의 사람이 이동하는 복잡한 거리였습니다. 또 길거리를 걷는 남녀들은 최첨단 유행에 맞춰 멋을 내었고 처음 보는 상품에 감탄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오랫동안 억눌려 지내왔던 사람들은 오랜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명동에서 소비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1957년 하루 동안 명동의 번잡한 일상을 돌이켜봅니다.
하루를 준비하는 새벽부터 오전까지
오전 5시, 명동에 새벽이 찾아오면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두부는 명동에 사는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아 10분마다 두부장수가 지나갔습니다. 푸른 새벽의 어둠이 걷히면 다방과 바에 사용될 음식재료들과 술을 보급하는 자전거들이 왕래했습니다. 다방에 쓰일 식재료 양은 평균 7,000원(현 210만원)이었고, 음식점은 평균 1만원(현 300만원) 정도였습니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점심시간
점심시간이 되면 명동은 몰려든 군중들로 소란스러워집니다. 토요일에는 더욱 심해 귀가 울릴 정도였습니다. 명동 중앙통을 따라 50개가 넘을 정도로 즐비하게 늘어선 양장점과 구두점, 뒷골목에 들어찬 다방들과 맛집들, 술집들이 사람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명동은 유행의 중심지였기에 그 가격도 다른 곳보다 2배 이상 비쌌습니다. 그 당시 명동 땅값이 한 평에 20만원에서부터 30만원 정도였으니 이해되는 가격입니다. 요즘으로 추산하면 6,000만원에서 9,000만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오후 5시면 술로 활기를 찾는 명동
오후 5시, 이때부터 2시간 동안 명동은 가장 활기를 띕니다. 토요일은 2시부터 북적였지만 일요일은 한산했습니다. 명동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로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A라인, H라인 그리고 후레아, 헵번 스타일, 맘보 스타일의 유행을 걸쳤습니다. 이 시간에 명동을 찾는 사람들도 다양합니다. 바에 근무하는 접대부, 댄서들 그리고 명동의 유행이 궁금한 어린 여대생, 배부른 사업가, 대충 옷을 걸친 예술가, 말썽꾼 어깨패도 있었습니다. 낮 동안 한적했던 당구장, 베이비야구장, 기원, 캬바레, 댄스홀, 경마장 중계소는 곧 이들로 가득 찹니다. 늦은 밤이 되면 흐드러지게 취한 술꾼들이 거리의 성악가가 되어 울부짖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옵니다. 그리고 길목 군밤장수의 호롱불이 명동의 긴긴밤을 지킵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일대 지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