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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소극장들

6·25전쟁 후 국립극장이 명동 시공관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명동은 공연예술의 중심지가 됩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국립극장이 이전하면서 명동에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소극장이 공연예술을 이끕니다. 대표적인 극단으로 자유극단과 삼일로 창고극장이 있습니다.

개요

6·25전쟁 후 명동에 국립극장이 들어서다
6·25전쟁 후 국립극장은 일제강점기에 명치좌로 불렸던 명동 시공관에 자리를 잡습니다. 당시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기자들과 대중들에게 인기 있던 영화배우들로 국립극단이 구성됐고, 이어서 국립국극단, 국립오페라단, 국립무용단 등도 국립극장에 합류합니다. 국립극장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었고, 문화예술인들이 이용하는 다방과 술집들이 들어서면서 명동은 당시 공연예술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러나 1967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준공되고 1973년에는 국립극장이 완전히 이전하면서 문화예술가들은 명동을 떠납니다. 1970년대 들어 명동은 유명한 문화예술가들이 머무는 곳이 아닌 젊은이들이 유행을 즐기는 곳이 됩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동인제 중심의 극단과 소극장들이 명동에 새롭게 생겨나고 카페와 극장이 결합한 까페 떼아뜨르, 삼일로 창고극장, 명동엘칸토소극장 등에서 자유롭고 실험적인 연극들이 탄생합니다.
극단 자유, 삼일로 창고극장으로부터 시작된 명동 소극장
명동 소극장의 형성은 극단 자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극단 자유는 무대미술가 이병복이 1969년 4월 명동에 연 최초의 다방형 소극장입니다. 이병복은 프랑스 유학 중 전위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러한 살롱드라마를 시도하기 위해 까페 떼아뜨르를 열었습니다. 80석의 이 다방형 극장은 4월 9일 ‘세계연극의 날’을 맞아 이오네스코의 〈대머리여가수(김정옥 연출)〉로 개관공연을 가짐으로써 새로운 소극장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극장은 초기에 신진들의 창작극과 전위적인 번역극, 판소리, 그리고 꼭두각시놀음 등 민속연희를 선보입니다. 그 이후 베케트, 핀터, 귄테로스, 시스갈, 아라발, 올비 등의 번역극들과 윤대성, 오태석, 박항서, 유재창 등의 창작극과 함께 민속놀이도 무대에 올렸습니다.
1975년 명동성당 옆에 방태수가 에저또 극장이라는 소극장을 개관했으나 1년도 안되어 폐쇄 위기에 몰립니다.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정신과 의사 유석진이 딱한 사정을 듣고 극장을 매입하여 연출가 이원경에게 맡겼고, 이원경은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그곳에서 연극교육과 함께 PD시스템의 기획공연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제도는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개관과 폐관을 거듭하다 2011년 4월 태광그룹의 후원으로 재개관했습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재정적인 문제로 2015년 명맥을 다하고 문을 닫습니다.
다시 돌아온 명동예술극장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과거의 명동을 추억하며 옛 극장의 복원을 갈망하였고 명동의 상인들도 문화시설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여론이 반영되어 2004년에 정부가 ‘건축물의 문화유산적 가치보존’이라는 명분을 걸고 연구를 시작하여, 2009년 옛 국립극장을 연극전용공간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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