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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관광

1970~80년대 패션과 유행의 공간 명동

1970년대 명동은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높은 곳이었고, 첨단을 걷는 패션이 유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서구에서 들어온 히피문화를 다방과 비어홀에서 즐기기도 했습니다.

개요

1970년대, 히피 젊은이들로 채워진 명동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 위치했던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떠나고, 남산에 있었던 KBS 방송국도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40~50대의 문화예술가들도 명동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렀던 다방들과 값싼 술집들도 높은 땅값 때문에 무교동과 강남으로 떠납니다. 이후 명동은 히피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채워집니다. 당시 서구는 1968년 유럽을 뒤흔든 68혁명이 확산되던 때로 모든 일상적 통제와 금기에 도전하는 새로운 청년문화가 미국에서 히피문화로 나타났습니다. 1960년대 말 한국 젊은이들은 서구 히피문화의 정치·사상이나 문제의식보다는 장발, 청바지, 통기타 등 히피문화의 외형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히피문화의 정점, 심지다방
1960년대 말부터 젊은 통기타 가수들과 또래 청중들이 만나는 공간이 명동에 하나 둘 생기더니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라이브 음악다방과 비어홀이 급증합니다. 서울의 히피문화를 대표했던 곳은 명동2가 53번지의 심지다방이었습니다.
심지다방은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장점인 곳이었으나 이 장점이 단점으로도 작용해 결국 마약 암거래와 음란행위를 이유로 1972년 2월에 폐쇄되었습니다. 심지다방 외에도 꽃다방, 청자다방, 뉴중앙다방, 본전다방 등이 명동 히피들의 아지트 구실을 했습니다.
1969년에는 심지다방의 주인이 심지다방과 같은 건물에 비어홀 오비스 캐빈(OB’s Cabin)을 엽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도향, 서유석, 김세환, 양희은 등 당대를 풍미한 통기타 가수들이 오비스 캐빈의 무대에 올라 암울한 시대에 우울해 하는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오비스 캐빈이 대성공을 거두자 1970년 명동 입구에 금수강산이 생겼고 명동 통기타 시대는 1970년대 중반 쉘부르가 문을 열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1970년대 명동의 패션
1970년대 명동의 밤을 지배한 것이 통기타와 맥주였다면, 낮을 지배한 것은 패션이었습니다. 최경자, 노라노 등 1950년대부터 명동에 자리 잡았던 디자이너 외에 앙드레 김, 박윤정, 한계석, 조세핀 조, 김복환, 정창문, 박광현, 김정수, 이선옥, 김비함, 도재은 등이 명동에 의상실을 내고 유행에 민감한 고객들을 맞았습니다. 1974년경부터는 싸롱화라는 고급 구두가 명동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내건 의상실들 옆에는 파리와 뉴욕에서 유행 중인 명품 브랜드의 옷과 구두, 핸드백들을 진열한 토탈 패션 상점들도 많았는데, 이들 상점의 쇼윈도 안 제품들은 명품 브랜드 상표와 디자인을 도용한 ‘가짜 명품’들이었습니다. 1970년대 명동에는 기성복의 등장과 의류 유통구조의 변화로 인해 패션기업이 들어서고 제일, 코스모스, 롯데백화점 등이 줄지어 개점하여 패션의 중심지로 거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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