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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관광

서울 한양도성

이 성곽은 1396년(태조 5년)에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을 에워싼 도성입니다. 남산(목멱산)구간은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남산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입니다.

개요

한양을 보호했던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성부의 권위를 드러내고 외부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태조 5년(1396)에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세운 이후 여러 차례 수리하였습니다. 성의 높이는 약 5~8m, 전체 길이는 약 18.6㎞에 이릅니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는데,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흥인지문(동대문)·숭례문(남대문)·돈의문(서대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혜화문·광희문·소의문입니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습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한 목적으로 흥인지문(동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습니다. 한양도성은 전국의 민간인 장정 11만 8,000명이 참여하여 지었는데, 한양도성을 따라 걷다 보면 돌에 새겨진 관직과 군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0% 정도 복구된 서울 한양도성은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자격이 부여되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남산 목멱산 구간을 걷다
이 구간은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남산공원까지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남산을 가로지르는 형태입니다. 남산은 크기가 작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부터 신분이 높은 양반들까지 자주 올라 휴식을 취하거나 풍류를 즐겼던 곳입니다. 또 남산 정상에는 전쟁을 알리는 봉수대를 설치하여 궁궐에서 직접 살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남산의 모습이 크게 변한 것은 개항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곳이 남산 일대와 남산의 자락이었던 명동과 충무로, 용산 일대입니다. 남산 일대에는 일본공사관, 통감부, 총독부 등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이 들어섰으며, 공원화 사업으로 왜성대 공원, 남산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남산 중턱에는 조선신궁이 건설되어 일제 말에는 강제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기도 하였습니다. 광복이 되면서 일제 침략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항일 투사들과 관련된 기념관과 동상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후 남산은 조선시대처럼 다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남산에는 N서울타워와 남산 케이블카도 있으며 최근에는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과 함께 서울천년 타임캡슐광장이 들어서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산 주변 관광지와 가까운 밀레니엄서울힐튼, 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 신라호텔, 서울유스호스텔 등의 숙박 시설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울 한양도성 코스는 장충체육관-장충체육관 뒷길(도성 바깥·안쪽 길)-우수조망명소(용산구 방향)-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국립극장-나무계단길-남산공원 정류장-N서울타워-남산팔각정-목멱산 봉수대 터-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잠두봉 포토아일랜드-남산 회현자락 발굴현장-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으로 이어집니다. 총 거리는 4.2㎞로 걷는 데는 약 3시간 정도 걸립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2가 지도보기

  • 지정현황

    사적 제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