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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장군상

김유신(595~673)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통일신라의 토대를 마련한 장군입니다.

개요

김유신의 발자취
김유신은 595년에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신라의 가야 왕족 출신들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출세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김유신 역시 멸망한 가야의 왕손으로서 그와 비슷한 행로를 걸었습니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무예를 익혔고 629년의 낭비성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660년에 당나라 군대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661년, 대장군이 되어 다시 당나라 군대와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며 663년에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진압하였습니다. 뒤이어 668년에 신라의 문무왕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 침략에 나섰을 때는 내정을 다스렸습니다.
고구려 멸망 후 김유신은 삼국통일에 지대한 공을 세운 업적을 인정받아 문무왕으로부터 태대각간 혹은 태대서발한이라는 지위를 받았으며 67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설 같은 김유신의 일화들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은 전설 같은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15세에 화랑이 되고 2년 후인 17세에 신라의 중악에 들어가 수련을 하던 중 난승이라는 노인에게서 삼국통일의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싸운 629년 낭비성 전투에서는 전세에 밀려 신라군의 사기가 떨어지자 혼자 적진에 뛰어들었고 고구려군에서도 김유신과 대적하려 장수 1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군 장수는 김유신의 칼에 목이 떨어지고 이에 사기가 오른 신라군은 고구려군을 무찔렀다고 합니다. 김유신의 죽음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유신이 죽기 전 수십 명의 병사들이 울면서 그의 집에서 나오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고, 이 이야기를 들은 김유신은 그동안 자신을 보호하던 음병(陰兵) 즉 신령스럽고 비밀스러운 군대가 떠난 것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합니다.
김유신장군상의 건립
김유신장군상은 1969년 9월 23일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시청광장 앞에 건립한 동상입니다. 이후 지하철 공사로 인해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조각가 김경승이 청동으로 제작한 김유신장군상의 높이는 11.3m이며 오른손으로는 말의 고삐를 잡고 왼손으로는 칼을 쥔 채 앞으로 진격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39-2 남산공원 아동광장 내 지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