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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상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에서 조선 초대 통감부를 지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사살한 대한의병 참모중장인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입니다. 처음에는 숭의여고 안에 세워졌으나 1967년 조선신궁 터였던 남산공원 관리사무소 앞으로 옮긴 후 새 동상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2010년 동상의 균열을 막기 위해 금빛으로 칠하였습니다.

개요

하얼빈 역에서의 안중근
1909년 10월 26일 흑룡강성 하얼빈역, 안중근의사의 권총에서 3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그리고 러시아 재무장관 V.N.코코프체프와 함께 의장대 앞을 걸으며 군중들로부터 환호를 받던 이토 히로부미는 쓰러집니다. 안중근은 도망가지도 않고 불안한 기색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대한 만세’를 3번 외칩니다. 그는 왜 동양평화를 주장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을까요? 그는 잡히자마자 하얼빈에 위치한 일본영사관에 갇혀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를 담담히 말합니다. 1.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 2.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 3. 5조약(을사늑약)과 7조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 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 6. 철도·광산·산림·천책을 강제로 빼앗은 죄 /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 9. 교육을 방해한 죄 /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 12. 한국인은 일본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일본 천황을 속인 죄 / 14.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 /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이토 히로부미는 1894년 청일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같은 침략행위를 저질렀고, 1904년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 덕수궁에 방문하여 직접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했습니다. 이후 1906년 초대 통감으로 한국에 부임했으며 1907년 헤이그 밀사를 보낸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그해 8월에는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습니다. 1909년 대한제국의 병합 문제가 거의 종결될 즈음 통감을 사임하고 만주 침략을 계획합니다. 같은 해 10월에 하얼빈 역에 온 것은 만주를 분할 점령하기 위해 러시아와 담판을 짓고자 온 것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의사는 곧 뤼순감옥으로 이송됩니다.
뤼순감옥에서의 안중근
일본에서 뤼순 고등법원으로 이미 안중근의사의 사형이 전달된 상황에서 재판은 1주일이라는 형식적인 기간 안에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는 사형언도가 내리기 하루 전에 자서전인 《안응칠역사》를 써내려갔고, 이어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일 새벽까지도 《동양평화론》을 썼습니다. 《동양평화론》이란 근대화된 일본을 필두로 중국과 한국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동양평화를 유지하자는 생각입니다. 공동체 조건은 세 나라가 모두 독립국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생각하는 태도에 감옥을 지키던 일본인 헌병은 감화되어 집에 돌아가서도 그의 사당을 만들어 평생을 사죄하였다고 합니다. 사형 이후 의사의 시신을 찾지 못해 현재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묘 옆에 가묘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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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 남산공원 내 지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