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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묘

와룡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건립 시기는 불확실하며 1924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34년에 재건됐고 197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했습니다.

개요

삼국지로 익숙한 제갈량을 모신 사당
중구 예장동에 있는 와룡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이며 군사전략가인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제갈량의 호인 와룡을 따와서 와룡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와룡묘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고종의 후궁인 엄귀비가 세웠다는 설이 있고, 사당 뒤 암벽에 제갈량의 영정이 새겨져 있었는데, 1862년에 제갈량을 흠모하는 이들이 와룡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와룡묘는 1924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34년에 재건됐으며 197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제갈량과 함께 단군, 관우, 산신 등을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와룡묘가 중국 도교의 신앙과 한국 토속신앙이 합쳐진, 혼합적 종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와룡묘의 구조
와룡묘 경내에는 각각 다른 높이로 와룡묘, 단군성전, 삼성각이 지형에 맞춰져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룡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를 얹은 건물이고 나란히 서 있는 단군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와룡묘 내부로 들어가면 2m가 넘는 제갈량과 관우의 석고상이 있습니다. 더불어 제사 의식을 위한 대북·소북·종 등 악기들도 갖추고 있습니다.
와룡묘의 유래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에서는 최영이나 임경업처럼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군들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가 있는데, 중국의 장군이나 영웅을 신격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와룡 즉, 제갈량과 관성제군이라 불리는 관우입니다.
한국에서 제갈량이나 관우를 신격화하고 사당까지 세우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05년 평안도에 처음으로 와룡묘가 생겼고 그 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난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는 데 중국의 도움이 컸으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백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공원길 125-72(예장동 산5-6) 지도보기

  • 지정현황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