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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팔각정(국사당 터)

국사당은 조선 초부터 조선말까지 목멱대왕이라 불리는 산신을 모시고 국가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던 사당입니다. 목멱신사라고 불린 사당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본 사람들이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강제로 이전시켰습니다.

개요

남산 정상에 있었던 국사당 터
서울의 남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서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다 보입니다. 북쪽을 바라보면 경복궁, 창덕궁 그 뒤로 북악산까지 보이고 남쪽을 바라보면 한강과 그 건너 여의도와 강남의 빌딩, 관악산이 보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남산을 안산이라고 하여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를 지켜주는 수호산으로 여겼습니다. 팔각정 자리에는 목멱대왕이라 불리는 산신을 모신 목멱신사가 있었는데, 태조 이성계와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면서 국사당이라 불렸습니다.
왕실의 소원을 빌어주던 국사당
국사당은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왕실과 국가의 안녕을 빌던 굿터입니다. 조선시대 국사당에서는 매년 봄·가을마다 나라굿을 지냈고,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으면 비가 오길 기원하는 기우제도 지냈습니다. 나라굿은 주로 왕실 여인들의 의뢰로 행해졌습니다. 굿은 국가의 소원을 빌어주는 나라무당이 주관했습니다. 국사당에서 나라굿을 하는 날이면 많은 민중들이 험한 산길도 마다치 않고 올라와 잔치처럼 구경하며 나라굿을 의뢰한 왕실의 소원을 함께 빌었습니다. 그렇게 민중은 왕실과 소통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국사당은 유교사상으로 움직이는 조선시대에도 권위가 매우 강했습니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성종과 중종 때 무속신앙을 폐지하는데 앞장 선 조광조도 국사당 폐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옮겨진 국사당
일제강점기인 1925년 조선총독부가 남산 중턱(남산공원)에 큰 규모의 조선신궁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국사당은 그 당시 남산 정상(팔각정 자리)에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조선신궁 보다 국사당이 더 높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옮길 것을 지시합니다. 국사당은 일제강점기에도 관리인을 두고 국가가 관리하였는데, 그 당시 관리자였던 김용원씨가 당시 돈 50엔을 지불하고 국사당을 사들여 건물 그대로 인왕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자리를 옮긴 이후 1930년대까지도 궁중에 소속된 나인들이 찾아와 빌고 굿을 올리는 일이 빈번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제1공화국 때 남산 국사당 자리에 탑골공원 팔각정과 같은 모양의 정자를 짓고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정’이라 부르다가 1960년 4·19혁명 때 철거하고 1968년 11월 11일 다시 건립하여 팔각정으로 이름을 달리 불렀습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 지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