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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0호인 광희문은 서울을 둘러싼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에 동남방향에 있는 성문입니다. 한양도성이 지어진 1396년에 같이 완공되었으며, 수구문(水口門) 혹은 시구문(屍口門)이라고 불렸습니다.

개요

한양도성 사소문 중의 하나인 광희문
광명의 문이라는 뜻의 광희문은 1396년(태조 5) 도성을 건설할 때 도성 사소문 중 하나로 세워졌습니다. 광희문은 소의문, 혜화문, 창의문과 함께 한양도성의 4소문 중 하나였습니다. 한양도성 땅 중 지대가 낮아 남산의 물이 이 부근을 통과하면서 수구문(水口門)이라 불리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광희문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는 주요 도로 중 하나로 이용되었고 일본 사신의 도성 출입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외국 사신들은 한양도성 사대문과 사소문 가운데 조선 정부에서 지정해 준 문으로만 출입하도록 제한 받았습니다.
광희문은 격이 낮은 문이어서 왕실이나 사대부는 평시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위급할 때는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이 문을 통하여 도망간 일이 있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광희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급히 거처를 옮긴 일도 있었습니다.
광희문의 수난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광희문의 수난은 시작됩니다. 일제는 도로를 넓히고 전차를 놓는다는 명목으로 한양도성 곳곳의 성벽을 철거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동대문 밖에서부터 광희문 사이의 성벽도 철거됐고, 1915년에는 문루(성 위에 지어진 집)가 헐려 이후 오랫동안 홍예(아치형 석조문)만 남아있었습니다. 광복 후 1975년이 되어서야 복원을 시작하여 1977년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복원할 때 도로확장 관계로 원래의 자리에서 10여 m 남쪽으로 위치를 옮겨지었으며 편액도 새로 써서 붙였습니다.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아서
옛이야기들을 뒤로한 채 현재의 광희문은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광희문 옆으로 새롭게 정비된 한양도성이 100m 정도 이어져 있고 끝나는 지점에 수구문길이 뻗어 있어 산책길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수구문길 끝자락 방향을 그대로 연장한 장수길 건너편에서 주택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수구문길에서 장수길 그리고 성당길을 빠져나오면 동호로를 만나는데 이 도로를 건너면 철거되지 않은 성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오래된 성돌을 구경하며 도성 밖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이 한양도성길을 따라 걷다보면 신라호텔, 서울클럽,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유센터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2가 105 지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