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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정

석호정(石虎亭)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오랜 역사를 지닌 활터입니다. 국궁을 하던 곳이지만 세계를 제패한 한국 양궁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개요

조선 후기에 세워진 활터, 석호정
서울 남산 중앙국립극장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 보면 활 쏘는 장소인 석호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어렵게 극복한 선조 임금이 무예를 활성화시키려고 경복궁에 오운정(五雲亭)을 세우고, 일반 백성에게 활쏘기를 장려한 이후 인조, 효종, 숙종 대에 이르러 민간 활터가 여럿 생기는데, 석호정도 그때쯤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산 아랫대(남산골)에 위치했었으나 6·25전쟁 때 사라진 후 1956년 지금의 자리에 있던 노인정을 고쳐 지어 석호정을 만들었습니다. 1970년에 서울특별시와 ‘서울 정도(定都) 600년 남산 제모습찾기 100인 고증위원회’의 노력으로 현재의 자리에 새 터를 닦고 정자를 다시 만들어 9월 29일에 다시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래 국궁(전통 활쏘기)은 육례 중 하나로서 문무를 가리지 않고 중시되어왔으며 임금과 신하는 정기적으로 활을 쏘는 행사인 대사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무과 시험에 있어서도 실기시험 6과목 중 4과목이 활쏘기였습니다. 활쏘기는 조선시대 후반까지 군대의 주 무기로 사용되어오다 조총의 도입으로 밀려난 후 신체 단련의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남산골에 살던 선비들이 몸을 단련하기 위해 석호정에 올라 자주 활을 쏘았다고 합니다.
한국 양궁의 시작, 석호정
남산의 석호정은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발상지입니다. 1959년 수도여중 체육교사 석봉근이 고물상에서 구한 시위 없는 양궁 활과 석호정에서 얻은 국궁 시위를 사용해 석호정에서 홀로 연습을 하였는데, 1962년 석호정을 찾았던 양궁 매니아 미군의 엘로트 중령이 석봉근을 보게 됩니다. 이후 엘로트 중령은 석봉근 선생에게 양궁 시범을 보여주고, 장비 일체를 기증합니다. 이 인연으로 1963년 10월 한국일보사 주최 전국활쏘기 대회에 양궁 30m종목이 채택되어 경기도 수원성 터에서 실시되었고, 엘로트 중령과 석봉근 역시 선수로 참가하였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석호정으로 젊은 사람들을 모아 국궁을 바탕으로 한 양궁을 교육시켰고, 오늘날의 양궁 최강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면 국민스포츠, 국궁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궁 인구는 약 3만 명입니다. 활터는 현재 전국에 360여 개가 있습니다. 심신단련에 좋아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도 석호정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석호정은 회원제로 운영되어오다가 서울시 직영으로 운영방식을 바꾼 후 1회 이용료 3,000원, 월 이용료 3만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활 쏘는 자리는 7석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해 10m, 30m 사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6개월 넘게 이론·실기 연습을 하고 나서야 145m 거리에서 '입사(연습을 마치고 사대에 서는 일)'를 할 수 있습니다. 석호정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국궁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상세정보

  • 전화번호

    02-2266-0665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14-21 지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