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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양이재

대화재로 불탔던 경운궁(덕수궁)을 다시 지을 때 같이 지은 건물로 190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대한제국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었으며 현재는 대한성공회 주교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요

경운궁 건물이 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 있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구경하다가 우측 뒤편으로 가면 대한성공회 주교 집무실로 사용되는 경운궁 양이재를 볼 수 있습니다. 왜 궁궐건물이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되었을까요? 경운궁 양이재는 1905년 처음 지어졌을 때만 해도 경운궁에 속했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가 현재 북쪽 수녀원 자리에 있었던 이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합니다. 이후 1919년 덕수궁의 주인인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1920년 조선총독부가 덕수궁 궐내 전각들을 무단으로 매각하였고, 이 시기에 경운궁 양이재의 대지와 건물을 대한성공회에 팔았던 것입니다. 1927년부터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무실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2006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리모델링하였습니다.
황실교육기관 양이재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수학원 관제는 1906년 공포되어 1910년에 폐지되며, 이 기간 동안 양이재는 함희당과 함께 수학원의 교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수학원은 원장(칙임관) 1인, 교관(주임관) 4인, 서기(판임관) 3인의 교직원이 운영했고, 학생 수는 2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학기는 4월 1일부터 다음해 3월 31일까지였으며, 교과목은 수신·국어·한문·외국어·수학·역사·이과·음악·체조 등이었고, 수업시간은 매일 2~5시간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중학교 수준의 소수정예 황실학교였습니다.
양이재 뒤편에 가보면 철거된 함희당의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두 건물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전통 교육기관인 서원건축의 기본 건축 형식에 따랐습니다. 함희당은 강당의 기능을 했고, 양이재는 학생들의 교실 역할을 했습니다. 전면에는 양이재를 두고 후면에 함희당을 배치하였으며, 각 건물 전면에 행각(대체로 복도형태의 건물이 이어진 것)을 설치하고 두 건물 사이에 복도 3칸을 연결시켜 이동을 편리하게 했습니다. 양이재는 정면 7칸, 측면 4칸이었으며, 함희당은 정면 8칸, 측면 3칸이었습니다. 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합니다. 기온이 달라지는 사계절에 모두 이용할 수 있게 양이재는 중앙에 시원한 대청을 두고 그 양측에 겨울에 따뜻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온돌방을, 그리고 온돌방 바깥쪽에는 홍원과 맞닿아 있는 누마루를 설치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황실의 흔적
일반 민가와 다르게 지붕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의 수평마루)와 내림마루(용마루의 양쪽 끝단에서 수직방향으로 내려오는 마루), 추녀마루(지붕 45도 방면 추녀 위 마루)에 용두(용머리)가 있어 황실의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황실의 또 다른 교육기관으로는 덕수궁 내 위치한 준명당이 있으며 이곳은 고종황제의 딸인 덕혜옹주가 공부한 곳입니다.

상세정보

  •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지도보기

  • 지정현황

    등록문화재 제267호